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리산느 타르가르옌 (문단 편집) ==== 자식 문제와 비극의 시작 ==== 59AC에 왕국에 오한병이 돌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소협의회의 법무대신이었던 알빈 매시 공과 그랜드 마에스터 베니퍼를 비롯해 많은 귀족들이 죽거나 죽기 직전까지 갔으며, 가장 비극적이었던 죽음은 대너리스 공주의 죽음이었다. 공주를 살리기 위해 오만가지 방법이 동원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재해리스가 드래곤스톤의 용 사육사들에게 새끼 용을 데리고 오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어린 시절 병약했던 아에니스 1세 역시 용을 길들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이미 때는 너무 늦어 공주는 결국 일곱 살의 어린 나이로 죽고 말았다.[* 이때까지 타르가르옌 가문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흐르는 용의 피가 전염병을 막아준다고 믿고 있었으나 대너리스의 죽음을 보고는 그 믿음이 흔들렸다고 한다.] 대너리스의 사후 알리산느는 엄청난 실의에 빠졌지만, 이듬해에 태어난 [[알리사 타르가르옌|알리사 공주]]를 통해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비록 커가면서 오빠 바엘론 왕자와 더 닮아가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에는 대너리스와 판박이었기에 더욱 위로가 되었다고. 61AC에는 이부 여동생인 조슬린 바라테온과 그녀의 사촌들을 대녀로 맞이해 양육했다. 조슬린은 머지 않아 드래곤스톤 공(Prince of Dragonstone)으로 임명된 아에몬과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딸 마에겔 공주를 출산했다.[* 과거에 알리사가 바엘론을 쫓아다녔던 것처럼 이번에는 마에겔이 알리사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고, 알리사는 자신을 두고 강아지처럼 쫒아다닌다며 귀찮아했던 바엘론처럼 여동생을 귀찮아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바엘론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고.] 왕국의 도로 건설 산업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은 63AC에는 사남 [[바에곤 타르가르옌|바에곤 왕자]]를 출산했고, 바로 그 다음 해에는 [[다엘라 타르가르옌|다엘라 공주]]를 낳았다. 이로부터 3년 후에는 [[사에라 타르가르옌|사에라 공주]]를, 또다시 4년이 지나서는 자식들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일컫어지는 [[비세라 타르가르옌|비세라 공주]]를 출산했다.[* 그런데 앞서 낳은 자식들과 달리 바에곤부터는 다소 문제가 있었다. 바에곤은 형들과는 달리 연무장보다는 서고를 선호했고, 뚱하고 따분한데다가 말도 없는 아이였다. 다엘라는 알리산느와 마에겔을 제외하고는 가족들조차도 대하기 어려워할 정도로 겁이 많았다. 사에라는 조금이라도 관심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면[* 굳이 긍정적인 종류의 관심이 아니더라도 그냥 주목의 대상이 자기가 아니면 엄청나게 화를 냈다고 한다. 어머니의 신경이 다엘라를 돌보는데로 가기만 해도 토라지고는 했다고.] 화를 내는데다가 늘 심한 사고를 치고 다니는 고집불통이었으며, 비세라는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지만 거만하고 쉽게 우쭐대는 성격이었다.] 70AC에 아에몬 왕자와 [[조슬린 바라테온]][* 알리산느의 이부여동생이므로 아에몬에게는 고모 겸 이모다. 조슬린은 [[바라테온 가문]] 특유의 흑발과 벽안, 182cm에 달하는 장신을 지닌 대단한 미녀였다.]이 결혼을 했다. 73AC에는 딸 마에겔 공주가 [[칠신교]]에 귀의해 수련 셉타가 되었다. 같은 해에 알리산느는 조상인 '영광스러운' 가에몬[* [[다에니스 타르가르옌|'꿈꾸는' 다에니스]]의 남매이자 남편. 아에곤의 정복 전까지 가장 위대한 드래곤스톤의 영주였다고 한다.]에게서 이름을 따온 가에몬 왕자를 낳았지만 조산에 난산이었던지라 생후 석 달만에 왕자는 죽고 말았다. 이때 알리산느 왕비는 엄청나게 비통함을 느꼈다고 한다. 심지어 언니 라에나 공주마저도 그 해에 사망했다. 그 해 말에는 알리산느와 재해리스가 총애하던 킹스가드 [[스트롱 가문|루카모어 스트롱]] 경의 추악한 비밀[* 킹스가드 기사였으면서 비밀리에 무려 세 명의 여성들과 각기 다른 가정을 꾸렸던 것이 들통나고 말았다. 자식이 총 16명이나 되었다고. 게다가 재해리스에게 자비를 구걸하면서 '''"제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서라도"'''라는 말을 해버린 탓에 훌륭하게 자폭하고 말았다. 루카모어 경은 거세된 뒤 아들 둘과 함께 장벽으로 보내졌고, 남은 부인들과 자식들은 각각 하렌홀, 드리프트마크, 그리고 스톰즈엔드에 맡겨졌다.]이 폭로되면서 그가 자신들을 바보 취급했다고 생각해 엄청난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73AC부터 알리산느는 자식들 문제로 골머리를 썩게 되는데, 시작은 바에곤 왕자와 관련된 문제였다. 본래 알리산느와 재해리스는 연년생으로 태어난 바에곤과 다엘라가 나중에 맺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바에곤에게 여동생을 잘 챙겨주라고 당부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바에곤은 다엘라를 무시하고 다엘라는 차가운 오빠를 무서워 했기 때문에 둘의 사이는 점점 벌어져 갔다. 결국 바에곤이 연회장에서 대놓고 글도 제대로 못 읽는 멍청이하고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엘라에게 망신을 줘버린 이후[* 알리사는 이 말을 듣자 분노해 바에곤의 머리에 와인을 부어버렸다. 바에곤은 아까운 아버 골드를 낭비했다고 중얼거리며 혼자 연회장을 떠나버렸다.]로 남매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일이 이렇게 되자 알리산느는 우선 사에라와 비세라를 염두에 두었지만 바에곤은 그 둘에게는 더더욱 관심이 없어서[* 알리산느 왈, 그 두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나 모르겠다. 어떤 학사가 그 애들에 대한 책이라도 쓴다면 모를까(...).] 그 계획도 포기하게 됐다. 그나마 바에곤은 성장하면서 타르가르옌 특유의 아름다운 용모를 갖추고 어렸을 때보다는 [[일코|예의를 갖추는 척이라도 할 수는 있게]] 되기는 했으나, 무술 실력은 훈련을 시켜주던 바엘론도 고통스럽게 만들 정도로(...) 형편없었고 그마저도 누나 알리사에게 검술 대결에서 지면서 완전히 때려 치워버렸다. 여자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알리산느는 결국 바에곤의 결혼을 포기하고 그를 [[시타델]]로 보내 아치마에스터가 되도록 하였다. 그래도 74AC에는 아에몬과 조슬린이 첫 손자인 [[라에니스 타르가르옌|라에니스 공주]]를 안겨주어 대단히 기뻐했다고 한다. 알리산느는 대너리스 공주에게 그랬듯이 손녀딸을 '언젠가 여왕이 될 아이'라고 불렀다. 75AC에는 그녀의 자식들인 바엘론과 알리사[* 전통대로라면 실질적인 장남과 장녀인 아에몬과 알리사가 맺어져야만 했지만, 알리산느가 알리사는 옛날의 자신들 부부만큼이나 사이가 가까운 둘째 오빠 바엘론과 맺어져야 한다고 말해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가 결혼을 했다. 둘의 결혼으로부터 2년이 지났을 때 둘째 손자인 [[비세리스 1세|비세리스 왕자]]가 태어났다. 하지만 같은 해에 태어난 알리산느의 아들 발레리온 왕자는 가에몬 때와 마찬가지로 난산으로[* 알리산느는 이 출산의 여파로 [[엘리아 마르텔|반 년 동안이나 몸져 누워 있었다.]]] 태어난 병약한 아기였고, 한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죽었다.[* 발레리온 왕자를 화장하면서 알리산느는 '어미가 자식을 불태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거늘'이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크게 상심한 알리산느는 자신도 이제 42살이나 되었으니 손주를 볼 나이라며 자식을 그만 낳고 싶다고 말했으나, 재해리스는 [[알리사 벨라리온|우리의 어머니]]도 46세에 조슬린을 낳으셨지 않냐고 말하며~~그래서 돌아가신 건 생각을 안 했나보다~~ 그녀를 만류했다. 결국 80AC에 44세의 나이로 막내 가엘 공주를 낳았다.[* 노산의 영향인지 작고 연약하며 살짝 지능이 모자란 아이였지만 가에몬이나 발레리온과는 달리 영아기에 사망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겨울에 태어났기에 '겨울 아이'라 불렸다. 혹자는 그녀를 낳았을 당시의 알리산느의 나이를 겨울에 빗댈 수 있었기에 그렇게 불린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가엘 공주가 태어난 해에는 결혼과 관련돼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 겁이 많은 공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빨리 치워버리고 싶었던 것인지(...) 재해리스 1세는 다엘라가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매우 초조해 하면서 차라리 남자 백 명을 발가벗겨놓고 다엘라에게 직접 고르게 하는 한이 있어도 그 애가 16살이 되기 전에 빨리 결혼시켜야 한다고 닥달을 했다. 알리산느도 자기 딸이 셉타나 침묵 자매단이 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수많은 방법을 강구했다.] 다엘라 공주의 혼사가 마침내 정리되었다. [[코를리스 벨라리온]]을 포함해 많은 영식들과의 혼사가 불발되고 나서, 알리산느 본인이 직접 [[라니스터 가문|타이몬드 라니스터]][* 구혼 당시 스무 살로 왕국 최고의 미남들 중 한 명이었으며 난공불락의 성인 [[캐스털리 락]]의 후계자였다. 여러모로 신랑감으로 적절해 보이는 남자였으나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데다가 [[알코올 의존증|술은 그보다 더 좋아했기에]] 썩 그렇지만도 않았다.], [[보어문드 바라테온]][* 당시 스물 여덟 살로 아버지 로가르를 닮은 건장하고 호탕한 미남이었다. 타르가르옌 가문 특유의 족내혼 풍습을 감안하면 구혼자들 중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로드릭 아린]]의 세 사람을 다엘라에게 소개시켜주었다. 공주는 이들 중에서 '아버지처럼 선하고 현명한' 로드릭 아린을 골라 결혼했다. 알리산느는 로드릭이 재해리스가 요구한 대로 '착하고 다정하며, 다엘라를 사랑하는' 남자였기에 이를 예측하고 있었다.[* 알리산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로드릭이 가장 떨어지는 구혼자라고 여겼다. 그가 이미 서른 여섯 살이나 먹은 홀아비인데다가, 키도 작고 배도 나오고 머리도 벗겨진 전형적인 중년 아저씨였기 때문. 그러나 다엘라는 그의 네 아이들의 새 엄마가 되어주겠다며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다엘라와 로드릭은 같은 해에 드래곤스톤에서 간소한 결혼식을 치른 뒤 [[이어리]]로 갔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바엘론과 알리사의 사이에서 셋째 손자인 [[다에몬 타르가르옌|다에몬 왕자]]가 태어났다. 그러나 다엘라 공주는 결혼한지 2년만에 딸 아엠마를 낳고 산욕열로 요절했다. 알리산느는 딸의 죽음에 크게 상심해 로드릭 아린[* 그는 아내를 이어리에 안장하고자 했으나 알리산느는 딸은 드래곤의 혈통이니 화장해 드래곤스톤에서 언니인 대너리스의 옆에 안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리의 마에스터, 그리고 딸을 일찌감치 결혼시킬 것을 강요한 재해리스 1세를 엄청나게 원망했다. 특히 알리산느는 재해리스에게 '1년이나 2년, 심지어는 10년은 더 데리고 있었어도 상관 없었을 것을 왜 아이를 낳을 만큼 튼튼해지지 않은 어린 나이에 내보냈느냐'라고 쏘아붙였다. 이에 대한 왕의 대답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84AC에는 또다른 딸인 알리사마저 셋째 아들 아에곤을 낳은 뒤 회복하지 못하고 24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아에곤 왕자도 한 살도 안 되어 사망했다. 84AC에는 사에라 공주가 초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공주가 그녀가 총애하던 페리안느 무어와 알리스 턴베리[* 알리산느가 보기에는 둘 다 얼굴만 반반하지 머리 속에 든 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조나 무튼[* 메이든풀의 후계자였다.], 로이 코닝턴[* 사에라와 동갑으로, [[코닝턴 가문]]의 젊은 가주였다. [[적발]]을 지니고 있어 '붉은' 로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브랙스턴 비스버리[* [[비스버리 가문]]의 후계자였다. 가문명에서 따온 스팅어(찌르는 자 또는 벌침)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행실이 매우 문란해 젊은 나이에 벌써 리치와 킹스랜딩에 각각 하나씩 사생아를 두고 있었다.]와 아주 난잡하게 놀아나던 것이 들통나고 만 것이다.[* 알리산느는 평소부터 사에라와 어울려 다니는 다섯 청년들을 좋게 보지 않았지만, 재해리스는 사에라는 다엘라와 달리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니 결혼시키는게 어렵지 않겠다며 좋아하기만 했다. 게다가 늘 여섯이서 같이 다니니 남자와 둘만 있으며 놀아날 일도 없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해 별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다.~~아이고~~] 세 귀족 영식이 궁정 광대를 창관에서 조롱하다가 도시경비대에 걸렸는데, 이때 술에 취한 채로 그것이 사에라 공주의 명령이었다고 자백해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알리산느는 직접 페리안느와 알리스를 찾아 갔고, 그녀들을 통해 사에라와 브랙스턴의 주도 하에 여섯이서 불건전한 유희를 즐겼음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알리스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도 임신한 상태였다. 평소에는 가벼운 사고만[* 그런데 [[사에라 타르가르옌]]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가벼운 사고라는 것도 전혀 가볍지가 않다(...).~~언니 요강을 벌로 꽉꽉 채운 거의 어디가 가볍다는 걸까~~] 치고 애교로 아버지를 구슬려 넘어가던 사에라 공주였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덮어줄 수 없어 알리산느와 재해리스는 그녀를 [[철왕좌]] 앞으로 소환해 직접 심문했다. 사에라는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눈물을 흘리며 결백을 호소하다 나중에는 본인이 질렸는지 재해리스의 누구에게 처녀성을 주었냐는 질문에[* 아마도 그 상대와의 결혼을 추진해서 추문을 덮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셋 다 자기가 내 첫 남자인줄 알더라'라고 신랄하게 대답해 아버지를 경악케 했다. 그러나 알리산느는 애초에 딸을 순진무구한 소녀로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알리산느는 처음부터 사에라를 두고 '영리하기는 해도 현명하지는 않은 아이'라고 평했다.] 전혀 당황하지 않고 이제부터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냐고 딸에게 침착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사에라는 이에 대해 아마 결혼을 하게 되지 않겠냐고 하면서 '굳이 왜 하나만 골라야 하나요, '''마에고르는 여섯인가 여덟인가랑 동시에 결혼하지 않았나요?''''라고 답하고 만다. 이를 알게되어 대노한 재해리스는 사에라를 처소에 감금해버리고는 '그 애는 이제 내 딸이 아니다'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알리산느는 '그 애는 여전히 우리 딸이다'라고 답하며, '당신은 마에고르의 잔당도, 아에레아를 옹립하려 했던 로가르 공도 용서하지 않았느냐. 그 애가 적절한 처분을 받고 속죄한다면 분명 딸도 용서할 수 있을 거다'라고 말해 재해리스를 설득했다.[* 알리산느는 늘 남편이 그녀처럼 생각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는 실제로 재해리스도 딸을 용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에라는 처소에서 드래곤을 길들여 도망치려 하다가 위병들한테 붙잡혀 실패했고 더욱 화가 난 재해리스에 의해 아예 탑에 감금되고 만다. 알리산느는 더 이상 남편의 선처를 구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알고 통곡했다고 한다. 사에라와 어울렸던 다섯 명의 처분이 정해지고 난 뒤[* 페리안느는 조나와 결혼해 제법 사이가 좋은 부부가 되었고, 알리스는 로이와 결혼할 것이 결정되었지만 로이가 자기가 아이 아버지일 리가 없다고 극구 부인해 사생아 딸[* 로이와 같은 선명한 붉은 머리를 가졌었다고 한다.]을 낳고 핑거스 인근의 소영주에게 시집을 갔다. 로이는 에소스로 추방당했다가 창녀의 칼에 찔려 죽었고, 가장 죄가 무거웠던 브랙스턴은 재해리스 1세와 직접 결투 재판을 벌였다가 왕에게 패배해 죽었다.] 사에라 본인은 언니 마에겔의 감시 하에 침묵 자매단에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사에라는 그곳에서도 도주해 리스의 환락정원에 들어갔고, 이 소식을 들은 알리산느 왕비는 '우리가 딸을 창녀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탄했다.[* 재해리스도 포기하며 '그 애는 처음부터 창녀였다'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국왕 본인도 사에라가 떠난 이후로는 기력이 이전같지 않았다고 한다.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국정에 더욱 매달렸다고도 전해진다. 마에스터 엘리사르가 말하기를, '''"왕은 딸들의 양육보다는 도로 건설을 더 잘했다."'''] 알리산느는 수많은 상실에 지쳐 점차 국정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86AC에 알리산느는 이전부터 총애했던 화이트하버의 영주 테오모어 맨덜리 공과 자신의 열 번째 자식인 비세라 공주의 약혼을 발표했다. 그러나 허영심 많고[* 오만한 성격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예쁘다고 떠받들어주는 남자들을 모두 개처럼 취급했다고 한다. 자기를 따라다니던 '머리가 마찬가지로 골비었던' 여자아이들에 대한 대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야심만만했던[* 비세라는 알리사의 죽음 이후로 재혼하지 않고 있던 오빠 바엘론과 결혼해 왕비가 되고자 했다. 대놓고 자기가 알리사 언니보다 훨씬 예쁜데 안 될게 뭐가 있겠냐고 떠들고 다녔다고.] 비세라는 그 혼사에 진절머리를 쳤다. 알리산느는 테오모어는 현명하고 다정하며 양식이 있는 좋은 신랑감이라고 말하며 딸을 설득했지만 비세라는 '그렇게 그 사람이 좋으면 어머니가 그 사람이랑 결혼하세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런데 테오모어 맨덜리는 이때 나이도 엄청나게 많은데다가 벌써 네 번이나 결혼하고 부인들과 사별을 해 자식들도 많이 두고 있었다. 그에 비해 비세라는 고작 15살이었는데다가 나이 든 남자의 재혼 상대로 가기에는 더 격이 높은 신분(얼마 남지 않은 왕의 친딸이었으니)이었으니 저 혼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만도 하다. 알리산느야 비세라가 다엘라처럼 남자의 나이나 외모나 사별 여부보다는 내적인 면을 봐주었으면 했겠지만(...). 본편의 [[라이사 아린]]이 자기 아버지보다 나이많은 남편 [[존 아린]]과 결혼하고 불행한 생활을 한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비세라는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바엘론과 결혼하겠다며 그를 유혹해 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 바엘론의 침실에 알몸 상태로 들어가서 오빠를 유혹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노한 바엘론은 비세라에게 크게 화를 냈는데 말 그대로 불벼락을 내렸다고...] '얼어붙기 전의 마지막 자유를 만끽하려' 몰래 궁전을 나와서 새벽에 친구들과 함께 킹스 랜딩을 말을 탄 채로 질주하다 낙마 사고로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5년 새에 딸 셋이 요절해 비탄에 잠긴 알리산느는 남편이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밀정들을 보내 사에라의 동향을 살폈다. 사에라는 여전히 환락정원에서 창녀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알리산느는 셉톤이자 재상인 바스까지 대동해 바스와 함께 재해리스에게 이제 그만 딸을 용서하고 다시 궁정에 불러들여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재해리스는 이미 사에라한테 크게 실망하고 포기한터라 거부하며 '그 애는 처음부터 창녀였다'라며 폭언을 퍼부을 뿐이었다.[* 재해리스는 사에라가 궁정의 사내 절반에게 다리를 벌렸다고 과장해서 말을 하며, '돈 한 푼도 없던 애가 [[매춘|무슨 수로]] 리스까지 갈 수 있었겠냐'라고 모진 말을 던졌다.] 알리산느는 적어도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라도 사에라를 용서하고 데려와 줄 수는 없겠냐고 끝까지 부탁했고 곁에 있던 바스도 왕비의 말대로 용서해주자고 간언했지만, 재해리스는 "당신에게 그 애가 필요하다면 도르네인에게도 살무사가 필요할 거다. '''창녀라면 킹스랜딩에 이미 넘치도록 많으니 그 아이의 이름은 다시는 듣고싶지 않다'''."라고 말하며 끝까지 거부하고 대화를 완전히 끝내버렸다. 게다가 알리산느가 [[실버윙]]을 타고 혼자 리스로 가봤자 일만 더 크게 만들게 뻔하고, 사에라는 우리와 웨스테로스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 그냥 묻어버리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알리산느는 재해리스의 태도에 크게 실망하고 분노해 홀로 용을 타고 드래곤스톤으로 가 죽은 딸들을 애도하며 2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마에겔의 중재로 알리산느는 남편과 화해했지만 사에라를 보고싶어 딸에게 편지도 보냈지만 이미 부모에게 정이 없어진 사에라는 답장을 보내지 않아 사에라와는 결국 의절하고 만다. 다행스럽게도 마에겔 공주의 중재로 알리산느는 남편과 화해하고 90AC에 열린 손녀인 [[라에니스 타르가르옌|라에니스 공주]]와 [[코를리스 벨라리온]]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92AC에 타스에서 해적들을 토벌하던 아에몬 왕자가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재해리스 1세는 웨스테로스의 전통적인 계승법과 달리 아에몬의 외동딸인 라에니스 공주가 아니라 아에몬의 동생인 바엘론을 새로운 후계자로 임명했다. 바엘론 왕자는 민중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는 인물이기도 했고, 소협의회의 대신들도 18살짜리 여자애와 '태어나지도 않았고 아들일지 아닐지도 모를' 그녀의 자식[* 라에니스의 본심은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그녀의 발언(내 아들의 마땅한 권리를 박탈하겠다는 거냐)이나 소협의회 대신들이 아들에 대한 것을 강조한 것을 보면 당시에는 여성인 라에니스가 직접 철왕좌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아에몬 왕자의 혈통을 잇는 후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자'인 라에니스의 아들이 철왕좌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아니 다른 가문들은 그냥 딸이 계승하던데 왜 타르가르옌만~~ ~~[[내로남불|영주는 몰라도 왕은]] [[남아선호사상|무조건 남자여야 한다는 걸까]]~~]보다야 바엘론이 더 통치자로서 적합하다는데 동의했다. 그러나 라에니스와 코를리스[* 재해리스의 처사에 분노해 선박대신직을 내려놓고 라에니스와 함께 자기 영지로 돌아갔다.], 조슬린과 보어문드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크게 분노한 사람은 알리산느였다. 손녀딸의 적법한[* 대너리스 때와 달리 라에니스는 아에몬의 외동딸로, 남자 형제도 없었다. 따라서 칠왕국의 계승법/관례 상으로 계승 서열은 아에몬>라에니스>바엘론>비세리스>다에몬>(그 이하 남매들과 그 후손들)이었다.] 계승권이 고작 성별 때문에 빼앗기는 것에 대해 반발한 알리산느는 '''"통치자는 좋은 머리와 진실된 마음이 필요할 뿐. 남근이 필수는 아니야. 당신이 진심으로 여자가 통치에 필요한 머리가 없다고 믿는다면, 나도 이제는 더 쓸모가 없겠네."'''라고 말하며 또다시 드래곤스톤으로 가서는 2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이 불화 또한 마에겔의 중재로 어찌어찌 해결되었다. 93AC에는 [[비세리스 1세|비세리스 왕자]]와 다엘라의 딸인 아엠마 아린의 결혼식에, 97AC에는 [[다에몬 타르가르옌|다에몬 왕자]]와 [[레아 로이스]][* 당대 로이스 가문의 후계자였다.]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이듬해에 열린 재해리스 1세 즉위 50주년 기념 연회에도 참석해 남은 자식들과 손자, 증손자들과 함께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